"예를 들어 자석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북극과 남극을 가르키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를 띄고 있는 분자, 자기 자성을 만들어내는 분자는 이 자석이 될때 일정한 분자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이 열을 가하게 되면 이 자석을 띈 분자들이 정보를 잃어버린다. 즉 자기가 어떤 방향에 서있을까를 잃어버린다. 725도인가 얼만가를 가열을 시작하면 갑자기 자성이 사라진다. 지금까지는 자석이 되어있었는데 자석이 사라진 것은 분자가 자석을 띌 수 있는 배열이 바뀌면서 방향이 틀려지니까 자석의 성질이 사라져 버린다. 그때 보면 그 안에는 모든 자성을 띄는 분자들은 그대로 다 있다. 그것이 자석을 이루는 분자들이 힘을 강력히 갖고 있어서 쇠가 됐거든요. 그안에 분자들이 마치 정보가 자석화되어있거든요. 자석이 있어서..
"唯識性이라고 하는 것은 흰두교에서 브라만인 사람은 계속 브라만으로 태어나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지라도 그 행위를 소유하고 있는 나가 브라만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소유하는가 즉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지금 삶에 있어서 다름은 있지만 브라만이라고 하는 자아는 변해가지 않는다. 그래서 변해가지 않는 브라만이 모든 행위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브라만은 없고 행위만 남아있다. 행위만 남아가니까 전후찰라에 정보라고 하는 자기가 지어놓은 소지장과 번뇌장에 정보가 있으면 그전에는 우리가 생각할때 무엇이 정보를 소장하고 간다라고 생각하는데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 정보만 남아있다. 그래서 이 정보에 새로운 정보가 오면 정보의 장이 변화가 온다. ..
"그것을 대체적으로 들으면 자기 자아를 부정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듣기가 싫은 것이다. 또하나는 같이 자아를 부정하는데 내가 잘났는데 我慢心을 다치기 때문에 싫어한다. 둘다 서로 자기 아만심이나 자아를 다치지 않는 쪽에서 적당히 타협을 해서 계속 이 자아를 끌고 가는 말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는 수행도상에 있다고 하면서도 세간지를 증득시켜가는데 이 세간지야말로 우리가 알아야할 근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말로 표현된다. 이 모든 생각들이 끊임없이 자아를 증장시켜서 나를 세우는 쪽에 의지가 작용하게 된다. 말을 그치고 생각을 그치고 말을 하려면 자아를 정말로 해체시키는 쪽의 말을 늘 듣고 하려고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말을 하든지 즉 ..
"不思議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면 저 사람이 나쁜 일을 많이 했으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서 나를 성내게 했으니까 내가 화를 내서 이 사람을 눌러서 화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렇게 하면 이 사람은 물론 과보가 안좋지만 나 스스로도 과보가 안좋다. 우리가 일상의 상식으로 흐르는 삶과 우리가 내적으로 갖춰진 본래적 삶과는 항상 어긋난 일이 많다. 상식으로 당연하게 생각된 일들이 깨달은 이후의 상황에서 비춰볼때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화를 내야할 당연한 상황에서 화를 내야하는 자체가 잘못된 일이 된다. 한편 칭찬해야할 상황에서 칭찬하는 것조차도 너무나 잘못된 상황이다. 우리가 생각을 일으키면 곧 그것이 대체적으로 칭찬하면서 탐심을 증진시켜가고 성내게, 비난하..
"아무 원인이 없고 다른 사람이 와서 나를 화내게해서 내 마음 가운데 화가 커지면 이것은 한편으로는 이 화가 전체 사회에 미치도록 준비되어 있다. 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탐심과 성냄이라고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철저히 받아야할 과보임에도 불구하고 바꿔말하면 이것이 모인 사회적 총량이 또한 그 사회에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할 공통적인 과보가 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 그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러한 것들이 가지가지 생각들이 실재는 그 생각 자체가 나다." T1000.0 : 화를 참는 것이 화를 푸는 것보다 더 위험한데 화가 안에서 점점 커지기 때문으로 참다참다 터지면 더 크게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화를 참는 것도 화를 푸는 것도 다 나라는 생각때문에 이뤄지는 것으로 나에 대한 생각을 고집하지..
"비유를 들면 다른 사람이 이런저런 일로 힘들게 해서 성이 나면 나에게는 아무 원인이 없고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의해서 성내는 사건이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은 나를 성내게 했으니까 나를 성내게 한 과보를 받겠지만 성낸 것 자체에 대한 과보는 철저히 내가 받는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를 성내게 했을지라도 성낸 그 자체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한번 성내면 한번 성낸 만큼 자기 삶이 힘들어진다. 아무리 안좋은 일이라도 성을 내지 않고 그 일을 처리해 나가야할 당위성은 스스로가 편안하고 열반의 삶을 누리고자 할때는 극력으로 아무리 싫은 일이라도 성내지 않으려고 극진히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한번 성내면 성낸 만큼 자기는 마음 속에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인연처가 되면 그 과보를 스스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