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차 재목이 되기도 하고 재목이 되지 못하기도 하는 중간에 처신하겠다. 그러나 재목이 되고 재목이 되지 않는 것의 중간이란 것은 도와 비슷한 것 같으나 도가 아니다. 그러니 얽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만약 도와 덕을 타고 유유히 떠다니는 자라면 그렇지 않다. 칭찬도 없고 비방도 없으며, 한번은 용이 되었다가 한번은 뱀이 되었다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면서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조화로움을 자신의 법도로 삼을 것이다.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면서 사물을 사물로서 부리되 외물에 의해 사물로서의 부림을 받지 않을 것이니 어찌 얽매임이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신농과 황제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만물의 정황이나 인간 세상의 습속은 그렇지 않다. 모이면 흩어지고, 이루면 무너지고,..
니체를 따라 우리는 반시대성을 시간과 영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으로 발견하게 된다. 즉 철학은 역사의 철학도 영원성의 철학도 아니다. 철학은 반시대적이며,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반시대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반하는, 도래할 시대를 위한' 철학이다. 새뮤엘 버틀러를 따라 우리는 에레혼Erehwon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인 '부재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치를 바꾸고 위장하며 양상을 달리하고 언제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지금-여기now-here'라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들뢰즈,『차이와 반복』p21 mlwlab: Erehwon은 now-here를 거꾸로 배열한 낱말이다. 들뢰즈는 에레혼이란 단어를 통해 철학이 '부재의 장소[no-where:어디에도 없는..
이 글은 '들뢰즈가 쓴 의 1.의식에 대한 평가절하(사유에 대한 옹호): 유물론자 스피노자(p32~38)'을 불교적 용어와 결합시킨 편집글이며 초점은 '전도몽상(뒤집혀진 꿈같은 생각)'에 대한 스피노자적 이해[혹은 증명]에 있다.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의식은 환상의 장소이다. 의식의 본성은, 결과를 받아들이되 그 원인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의식은 두 눈 뜨고 꾸는 꿈일 뿐이다.의식은 순수하게 이행적이다. 1. 원인의 질서: 인연이것은[무의식의 발견] 물론 의식이 환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본성은, 결과들을 받아들이되 그 원인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원인들의 질서는 다음과 같이 정..
조지 소로스의 투자법의 요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태과불급'이다. 소로스는 세계를 이해하는 틀로서 재귀성이란 개념을 여러해 동안 출판된 책들을 통해 강조해왔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생각에는 두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능인 인지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을 자신에게 이롭게 바꾸는 조작 기능이다. 시장 참여자는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는데 이 때 두 기능은 서로 재귀적 역할을 하며 돈다. 인지하고 조작하고 조작하고 인지하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다보니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결과를 결정할 수는 없다. 하여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귀성의 영향으로 지나치고 모자르고가 반복하는 게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라는 것이다. 즉 태과불..
마뚜라나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체험들의 유사성이 결코 구조적 결정론을 반박하지는 못합니다. 약을 먹는 것은 특유한 구조들을 갖는 분자들을 당신의 유기체 속으로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유기체의 일부가 되고 그것은 신경체계 구조를 변경시킵니다. 약을 먹는 것은 특유한 구조들을 갖는 분자들을 당신의 유기체 속으로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유기체의 일부가 되고 그것의 신경체계 구조를 변경시킵니다. 하지만 '일어나는 일'은 신경체계 자체의 구조에 의존할 것입니다. 당신이 집어삼키는 물질에 대응하는 유기체 내부의 수용체들이 없다면,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억해 두어야할 것은 수용체가, 문제되고 있는 물질 - 예컨데 약-의 구조에 부합하는 특유한..
해답은 이미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는 질문에 가려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멀리서 찾는다.그러니 찾아지지 않고 해답과 함께 살아간다.해답이 함께 있으나 알지 못하니 우연이면서 필연적으로 질문은 풀리고 풀리지 않고를 반복한다.이를 이상히 여겨 가만히 지켜보면 해답이 이미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안다는 것은 질문을 통해 찾고 싶었고 동시에 질문에 의해 가려져 보지 못한 해답을 알아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해답이 이미 함께 있지 않다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해답을 알아 보면 문제는 사라진다.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문제는 있어도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은 세상과 부딪지면서 생기는 마찰을, 문제와 질문으로 안고 산다. 나는 그 문제와 질문이 풀리고 풀리지 않..
'나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이 쉽지않은 철학적 물음에 가장 명쾌한 답을 주는 것은 불교다. 불교는 나는 오온이다.라고 한다. 오온이란 무엇인가? 「반야심경」에선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수행을 하실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춰보시고 일체의 괴로움을 건넌다. 오온이 모두 공함을 깨달는게 불교의 핵심이다.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쌓임(蘊)이다. 색은 몸이고 수상행식은 마음의 작용이다. 다시말해서 오온은 지금의[蘊] 몸과 마음이다. 즉 오온이 나라는 것은 나란, 몸과 마음의 작용들이 쌓여 이룬 것인데, 이 오온이 모두 공(空)하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사상이고 이는 무아(無我)란 말로 요약된다. 한가지 눈여겨 볼 특징은 불교가 마음의 종교라는 것이다. 몸을 가리키는 말은 색 하..
1.0 평상심(平常心)이란 몸과 마음이 합일된 상태다. 2.0 마음은 보여줄 수 없으며 몸은 말할 수 없다. 3.0 마음은 몸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그 역도 동일하게 성립한다. 즉 몸의 상태는 마음을 통해서 표현된다. 4.3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마음과 몸은 실체의 '양태들'이다.(실체는 자연이다.) 그런데 마음은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몸도 마음을 벗어날 수 없다. 따로 존재할 수 없기에 마음은 몸으로 표현된다. 표현된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뜻으로 마음은 몸으로 존재한다. 혹은 몸에 내재한다. 그 역도 동일하다. 몸은 마음으로 표현된다. 예컨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꿈은 몸의 상태를 표현한다. 덧붙여 마음에서 일어나는 7정(喜/怒/憂/思/悲/恐/驚)은 몸의 상태의 표현이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몸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