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수행은, 배고픔이 일어나면 음식에 대한 상이 있어 탐심과 진심을 동반한다. 좋아하는 것은 많이 먹으려하고 싫어하는 것은 먹지 않으려하고 배고픔이 채워지지 않으면 성내게 되는 맘이 동반한다. 탁발수행은 이런 탐심과 진심에 머물르지 않고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걸식 수행을 한다. 차제걸식은 좋아하는 것을 탐하는 것과 채우지 못해 성냄을 사전에 차단한다. 우리도 일상에서, 걸식은 아니더라고 같은 마음으로 수행을 해볼 수 있을 것같다. 먹고싶은데 못먹는 괴로움 먹기싫은데 먹어야하는 괴로움 싫어하는 음식이라 먹지않아 배고픔을 채우지 못해 생기는 괴로움 사소해 보일 수도 있으나 탐심과 진심에 이끌려 식생활을 하다보면 삶을 크게 훼손시킬 뿐아니라, 생활 전반의 걸친 탐진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법성게에선..
중도는 색과 공 사이의 진동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실재로는 색즉시공 또는 공즉시색에서의 진동이다. 요컨대, 모든 생명체는 다 다른 모습을 하고 한 생명으로 있다. 스피노자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실체의 양태이며 이 양태들은 동시에 한 실체이다. 모든 양태들은 한 실체가 무한히 펼쳐진[변용된] 것이며 따라서 실체의 양태와 양태가 구분되지 않은채로 구분되어 있는데 여기서 구분되지 않은 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공즉시색이며 우리는 이 속에서 공에도 머물지 않고 색에도 머물지 않는 진동의 중도를 따라야한다.
조건이 다르면, 배치가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독은 어떤 것도 그자체로는 독이 아닌데, 독이 독이 되려면 그것에 반응하는 분자적 배치를 만나야한다. 사람에게 독인 것이 뱀에게는 독이 안되는 것은 신체의 분자적 배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자체로 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에 반응하는 신체에서 독은 제1원인이 될 수 없다. 원인은 독에 반응하는 분자적 배치에 있다. 독이 제1원인이라면 어떤 분자적 배치에도 독이 되야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런 것은 없다. 화를 내는 신체 또한 마찬가지다. 욕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욕이 화가 나도록 반응하는 분자적 배치와 배치를 이룰 때 화가 난다. 화가 나게한 원인은 욕이 아니다. 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행은 우리의 몸맘을 바꾼다. 요컨대 ..
1. 꿈과 꿈 아닌 것의 차이는, 꿈은 바로 이룬다는 것이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노래를 부르면 된다. 다만 할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쓰면 된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그리면 된다. 무엇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을 하면 된다. 가수는 이미 가수이며 작가는 이미 작가이며 화가는 이미 화가이다. 운이 좋아 사람들이 알아주는 작가가 되고 작가라 불리겠지만 그렇다고 하는 일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해온 일을 똑같이 한다. 가수가 되어도 이미 가수였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초심이라고도 해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즉 가수가 되어도 이미 가수일때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꿈이란, 이미 가수인 가수가 가수가 되는 것이다. 인정받는 가수가..
법정스님의 에서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편을 발췌 인용함. "다 한때입니다"와 "추울 때는 추위가 되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에 나오는 동산선사의 문답 "몹시 춥거나 더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어느 곳이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때는 그대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그대 자신이 더위가 되라."(33) "모든 현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물결치며 흐릅니다. 이것이 우주의 리듬이고 실상입니다. 경제적인 불황도 인간들이 스스로 조절할 줄 모르니까, 우주의 리듬과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렇게 되도록 율동했기에 발생한 것입니다. 우주가 균형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얻고 잃은 것에 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