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호텔 주차장을 지나다가, 나는 신형 도요타 승용차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오래전부터 그런 차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차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서양 문명 전체가 물질을 얻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린 새로 나온 물건이나 최신형 차를 사라는 광고에 집중 공격을 받습니다. 이런 광고의 영향을 피하기는 사실 무척 어렵지요. 우리가 원하는 물건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끝없는 욕망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욕망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나는 욕망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욕망들은 긍정적입니다. 행복을 위한 욕망,..
욕구와 욕망은 같은 것이나 둘의 다른 점은 욕구를 의식하는 것이 욕망이란 점이다. 욕망은 욕구를 통해 무엇을 의식하는지 관찰해본다. 욕망하면 세가지가 떠오른다. 수면욕, 식욕, 성욕. 이 세가지는 다르게 이름 붙이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모두 욕구라는 점에서 같다. 욕구가 잠자리와 만나면 수면욕이고 음식과 만나면 식욕이고 섹스를 할 때는 성욕인 것이니 욕구를 보는 세가지 관점인 것이지 수면욕과 식욕, 성욕이 따로 있지 않다. 따라서 욕구는 무엇을 만나는가의 관점에 따라 명예욕 등등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욕구가 욕망이 되는 경계는 의식이다. 수면욕이 욕망이 될 때는 좋은 집에 대한 집착이 식욕이 욕망이 될 때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성욕이 욕망이 될 때는 환타지 섹스에 대한 집착이 따른다. 수면욕은..
아기가 태어날 때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다. 심지어 혼자서는 먹지도 못하는 채로. 아기는 믿음 하나로 태어난다. 세상에 나가면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나를 위한 모든 게 준비되 있을 거라는 믿음. 아기는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다. 아기의 믿음은 타당하다. 연기적 세상. 생명이 생명이게 하는 어울림이니. 아기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도 믿음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 아무 지혜가 없지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면 세상이 지혜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구족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볼 때마다 곳곳에 지혜가 번득일 것이다. 모두가 다 부처인 것을 믿는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는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처럼. [아기는 그것을 이미 아는 것일 수도]
멈추고[止] 있는 그대로를 본[觀],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너와 내가 지금 편한 것만 가져서도 선이 아닙니다. 다음 찰나에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대치사집對治邪執. 우리가 지금 '나'와 '너'가 함께 편하고 내일도 편안한가 라고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봐서 잘 다스립니다." T1000.0 : 말을 할때는 법을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활동을 할때는 너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나도 좋아야 하고 나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좋아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은 나쁘지만 미래는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은, 이른바 연기적 활동을 할 것인데 이는 자연의 활동에 계합하는 활동, 인연을 따르는 활동을 하는 것. [불수자성 수연성] 그러나 연기적 활동이 아무리 좋다해도 연기적 활동을 말하는 것이 다시 집착..
非空非海中 非隱山石間 莫能於此處 避免宿怨殃 비공비해중 비은산석간 막능어차처 피면숙원앙 허공이나 깊은 바다 속이나 깊은 산중 바위 틈에 숨는다해도 일찍이 내가 지은 악업의 과보는 이 세상 어디에 가도 피할 수 없다. 非空非海中 非入山石間 非天上地中 可遮業報處 비공비해중 비입산석간 비천상지중 가차업보처 공중에 뜨거나 바다 속에 들어가도 산속의 바위틈을 찾아 숨어도 하늘이나 땅 위 어느 곳에서도 이 업보를 막지는 못하노라 假使百千劫 所作業不無 因緣合遇時 果報還自受 가사백천겁 소작업불무 인연합우시 과보환자수 설사 백천겁이 지난다 해도 지은 없은 없어지지 않으니 인연이 마주칠 때 과보는 반드시 받게 되리라. T1000.0 : 지은 인연의 과보는 반드시 나타나는데 과보의 씨앗이 나툴 인연을 만나면 저절로 피어난다...
힘써 계戒를 지키려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기적 종자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 고요한 마음을 지켜내는 힘이 아직 이기적 종자의 영향력에 못미치기에 계에 의지해 고요한 마음을 중단하지 않는 것. 음욕이 마음에서 일어나면 인욕의 계로 마음을 돌려 '부단히' 고요한 마음의 힘을 성숙시키면 마침내 종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종자를 지배하게 된다. 종자의 주인이 되는 것은 고요한 마음이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가 되는 것인데,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어 아무 두려움도 없는" 자유다. 이것이야말로 무엇에도 비길바 없는 최고의 이익이 아니겠는가. 이를 이루기 위해 의지해야할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
고요히 지켜보는 마음. 한마음 한마음 일어나는 마음마다 인연의 총상이니 긍정할 것도 부정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고요히 지켜본다. 고요히 지켜보는 마음은 나와 나의 것이 본래 없음을 알기에 소유를 했다고해서, 소유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또 소유한 것을 잃어버렸다해서 마음이 출렁이지 않는 마음이다. 기대 밖의 결과가 있거나 손해를 보거나 병이 들때 일어나는 마음 또한 지은 인연의 총상이니 있는 그대로를 고요히 지켜본다. 마음이 아프면 아픈 것이고 마음이 좋으면 좋은 것이다. 따로 좋을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다. 고요히 지켜보는 마음은 지혜를 여는 문門인데 머물지 않는 마음이 저절로 인연을 따라 이루기 때문이다[中道].
1. 일체 모든 것이 공空하므로, 타인에게 空을 받아들이도록 간섭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空하다는 것을 등지게 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것도 그 자체로는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님을 空하다고 하면서 空이 옳다고 고집해 간섭한다면 空을 등지게 된다. 따라서 내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 空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간섭하지 않는 것이 空을 말하고 있다라고 함은,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으로 옳다고 할 내가 없는 무아無我를 표현하는 것이고 곧 무아는 모든 것이 '나'없이 한데 어울려 생명을 이루는 연기緣起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간섭한다는 것은 곧 연기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