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청정도 청정이라고 할 수 없고, 늘 분별된 기억만을 인식의 대상으로 남기면서 그것을 다시 알아차릴 수 밖에 없습니다. 습관적인 인식의 틀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틀을 '의意'라고 하고, 의를 통한 인식활동을 '의식意識'이라고 합니다. T1000.0 : 은 '의와 의식'를 다섯가지로 부른다. 업식, 전식, 현식, 지식, 상속식. 이중에서 지식은 "오염과 청정을 분별"하는 인식으로 매우 중요하다. 색수상행식으로 치면 행에 해당한다. 행을 닦는다는 修行의 행. 그렇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에 대한 다섯가지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별의 여력으로 형성된 기억인 업식業識이, 현재의 인연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면서[轉識], 자신의 경계를 만들고[現識], 만들어진..
인연의 흐름에서 보면 분별된 기억은 과거의 흔적이지만, 과거가 현재의 인연을 분명하게 분별하고 이해하게 하는 준거 틀이 되기 때문에 기억이 현재를 이해하는 방편이 됩니다. 기억을 방편으로 삼아 현재를 분명하게 인식하면, 분별과 기억조차 공성인 줄 알기 때문에 분별과 기억에 매이지 않게 되므로, 매임 없는 분별과 기억이 새롭게 인연을 창조하는 청정한 거울 같은 마음 씀이 되지요. 이 마음이 깨달은 마음입니다. T1000.0 : 기억이 현재를 이해하는 방편이듯 언어도 중요한 방편이고 부처님의 법도 방편이고 부처도 방편이다. 방편은 뗏목의 비유처럼 강을 건너면 버려야할 것이다. 하여 임제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했는데 이를 다 죽이고 나로, 주체적으로 우뚝 서라는 말로 ..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 그런 것이지 열등한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공부방식이나 선생님을 만나면 갑자기 실력이 폭등하는 사례를 보듯이 언제든 인연을 만나면 성장할 가능성이 늘 있는 것이다. 생긴 모습이 다 다르듯이 각자의 씨앗이 달라 각자 성장할 수 있는 인연이 또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을 달리해보는 경험을 많이 해봄으로서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씨앗은 무한한 기운을 함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기운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을 알게 되는 때는 인연을 따라 기운이 나툴때 비로소 알게된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는 수많은 인연을 만들면서 알게된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자신을 꽃피울 수 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인연이 교과서처..
그것은 인연따라 모양을 바꾸는데 따로 모양이 있어 바꾸는 것이 아니라서 모양이라고 할 것이 없는 모양이다. 모양이라고 할 것이 없는 모양을 모양이라고 이름하나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치 소립자가 전체로 보면 파동이고 낱낱으로보면 입자인데 전체로보는 것과 낱낱으로보는 것이 소립자에게는 인연이되어 이런 인연일때는 파동으로 저런 인연일때는 입자로 그 모양을 나투는 까닭에 소립자를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니면서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생과 삶이 일치하는 것인데, 생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무상한 흐름으로 흐르고 있는데 삶이 있음 만을 보고 있음이라고 하거나 없음만을 보고 없음이라고 할 때마다 둘은 어긋난다. 생이 본래 그러하므로 삶은 따로 자각할 것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