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선을 수행합니다. 나도 선 수행을 하고, 사업가도 법률가도 선 수행을 합니다. 나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삶에 대한 집착이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큰 사업'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몯느 사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 수행만 하라고는 말하지 않으며,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상태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 수행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까르마[業]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사 : 그대의 삶은 자연스러운 스타일[히피 스타일]이다. 그것도 좋다. 사업가 스타일의 삶 역시 좋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대가 이러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기 원한다거나 그대 자신을 위해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그대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불교를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원을 지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고, 많은 좋은 것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 경전에서는 말한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네모도 되고 동그라미도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마음 속에 부처를 모시고 좋은 동반자가 되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다르마(진리)의 큰 나무가 될 것이고, 큰그릇이 될 것이다. 이것을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그대들 모두는 수도승이다. 수도승이란 무릇 개인적인 집착들로부터 해방되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다르마의 큰 나무나 큰 그릇이 되려는 욕망을 갖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되어..
제자가 말했다.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습니다. 당신은 매서운 눈의 선사라면 세 가지 종류의 깨달음을 구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은 엄밀히 말해서 구분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아닌가요? 선의 세번째 조사인 승찬선사도 '구분하지 않는다면 도에 이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선사가 말했다. " 첫번째 깨달음, 본래의 깨달음, 최종적인 깨달음, 이것들은 같은가, 다른가?" 그 제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벽은 하얗고 바닥 깔개는 파랗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색깔에 집착하고 있다." "색깔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개가 뼈다귀를 쫓는구나." "그렇다면 그 세가지는 같은가요, 다른가요?" 선사가 말했다. "벽은 하..
"나는 아직 분명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좋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지금 섹스를 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섹스 속에 사라지고 그들은 매우 행복하다. 그때 한 강도가 총을 들고 들어와서 말한다. '돈을 모두 내놔!' 그들의 행복했던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공포에 질린다. '오, 살려주세요!' 이것이 바로 작은 마음이다. 그것은 외부의 상황이 변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다음, 어떤 사람이 만트라를 외고 있다. 이것이 한 가지의 마음이다. 그의 마음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안도 없고 밖도 없다. 오직 진정한 공의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강도가 나타나 '돈을 모두 내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겁을 먹지 않는다. 오직 옴 마니 받메 훔, 옴 마니 받메 ..
우리 모두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 이 자체는 문제가 되질 않아. 찰나 찰나 오직 맑은 마음 상태를 지키면 올바른 행동이 자연스레 나와. 이걸 우리는 올바른 업이라고 하지. 선업이니 악업이니 말하지 않아. 좋고 나쁨의 경계를 넘어선 거야. '하늘은 푸르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지? '물은 흐른다', 좋은 거냐 나쁜 거야? 이 역시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니야.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이름일 뿐이야. 착한 행동을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쁜 행동을 하면 지옥에 가. 그러나 찰나 찰나 맑은 마음을 지니면 올바른 행동만이 나타나서 천당과 지옥에 걸리지 않게 돼. 이것은 생사를 초월하고 일체 중생만을 위하는 보살행이야. 제일 중요한 점은 '왜 ..
여기서 보면 모든 의가 오직 앎[識]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의 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무명에 의해서 분별의 망념이 생기고, 기억된 업식의 망념에 의해서 의와 의식이 발현되기 때문에, 업식부터 상속식까지의 다섯 가지 의로 생멸의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앎이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속되면서 삼세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기억된 과거의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가 계속 이어지고, 현재와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추상하지만, 삼세와 사건들이 망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줄을 모르고 실재한다고 잘못 알면서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T1000.0 : 망념을 앎으로 대체하자. 순간순간 앎이 되면, 즉 무엇을 안다해도 그것이 망념임을 알고 망념을 내려놓고 앎이 들어오..
생각을 돌이키고 보면 언제나 현재 무명이란 인연이 만든 분별이 공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인식이기에, 분명한 인식[明]이 없음[無], 밝게[明] 알아차리지 못함[無]을 뜻하지만, 무명만이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내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인연과 무명과 기억이 합쳐져 잘못된 인식을 만듭니다. 무상한 인연을 기억된 분별로 읽으면서 그것이 현재의 인식이라고 읽고 있는 것이 무명이면서 허망한 기억[妄念]이며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인식에 의해서 기억들의 총상이 인식 주체로서 자아가 되고 분별된 기억들의 영상이 인식 대상이 되면서 허망한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T1000.0 : 무명이 인연이 만든 분별이 공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인식이라 함을 덧붙여 말하면, 무명은 주체와 대상을 세워 따로 존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