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지는 모든 것[일체]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유심조]이다. 말해지는 것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관찰자와 독립적인' 실재와 관련해서, 그것이 존재한다는, 게다가 명백하게 주어진 것으로 간주된다는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외부의 실재 또는 진리에 접근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함으로 40) 프로타고라스를 따라 해 보자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게 돠겠군요. '관찰자는 만물의 척도다.' 내 주장은 그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관찰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는 모든 지식의 기초입니다. 인간 자신, 세계 그리고 우주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주..
고집멸도-도행지이성
괴로움은 본래/따로 실체가 없고 마음이 만들고 있는데 내려놓으라하면 본래/따로 실체가 없어 내려놓을 게 없다. 이를 성찰해 죄무자성종심기. 내려놓는다하여도 내려놓을 게 없는 성찰 속에서 내려놓을 때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단, 피할 수 없는 것은 과보다.과보를 달게 받는 것이 '당연하지' 할 때, 책임을 다하는 것이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는 완성이다. 한편 5계를 강조하는 덕은, 그 과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성찰을 통해 괴로움이 사라진다해도 받아야할 과보가 어마무시하므로 이를 달게 받기 전에,계를 지켜 예방한다. [예컨대 요즘 정치권의 미투사건 같은 세번째 계의 과보는 실로 크다는 걸 실감한다] "첫째, 아무리 성질이 나고 화가 나더라도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마라. 둘째, 아무..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정신분열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때 두 명의 낙담한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방문하여 어떤 '아픈' 아이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공포의 대상이고 무시무시하게 행동하며 급우들을 위협하고 잉크병을 던지고 가족을 폭행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그들은 베이트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베이트슨은 그 애를 더 이상 따로 봐서는 안 되고, 말하자면,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아이의 행동에 불편을 제기하는 모든 이들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문했습니다. 그런 행동은 어떤 관점에서 의미가 있을까? 그런 행동은 어디에 끼워 맞출 수 있을까? 마침내 부모와 형재들 그리고 선생님이 왔습니다. 첫 번째 만남을 가진 후 베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