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따로 괴로움이란 없는데 괴롭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생각에 집착해 있다는 신호. '내 생각에 빠져 있구나' '내가 괴로움을 만들고 있구나' '내가 원하는 되로 되길 바라고 있는데, [안되고 있구나.]' '그게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내 생각을 내려놓을 기회. 괴로움을 통해 성찰한다. 괴로울 이유가 따로/본래 없는데 내가 만들고 있다. "내려놓아라" "내려놓을 게 없습니다" "이미 사했노라" '살아만 있다면 뭐든 별일 아니다.'
1. - 좋고 나쁘고의 윤회 원하는 대로 되면 좋고 원하는 대로 안되면 나쁘고 : 분석적 인과론의 윤회 - 좋고 좋고의 순환 원하는 대로 되면 좋고 원하는 대로 안되도 좋고 : 연기적 인과론의 순환 2. [분석적] 인과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 무유정법 3. 좋고 나쁘고는 생각. 이 생각의 기준이 나, 인과, 정답을 요구하는 확정성... 4. 우리가 가난해도 괴롭지 않고, 병이 나도 괴롭지 않고, 힘이 들어도 괴롭지 않게 살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되면 재산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아요. 재산이 있으면 보시할 수 있어 좋고, 없으면 수행하기 좋고,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잘 봉양할 수 있어 좋고, 또 부모님이 안 계시면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좋고, 남편이 살아 있으면 의좋게 살아서 좋고, 돌아가시면 혼자 ..
우리 문화권의 어떤 사람이 단어들을 사용하면 우리는 그가 뭐를 의미하는지 금방 압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바를 우리가 어떻게 해서 아는지는 모릅니다. 우리는 말을 운용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내는 주목할 만한 끌끌 칙칙 등의 소음으로부터 특정한 의미가 어떻게 끄집어내는지는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듯이 (아는 듯이) 그렇게 말을 운용합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떻게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떤 사람이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말을 하고 내가 그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때 그게 뭐를 의미하는 지를 알 뿐입니다. 말은 교호적으로 작동하는 (주체로서 작동하는) 단순치 않은 체계들의 하나의 행위로 파악됩니다. (체계들 간에는) 분명한 안정성들이 발전되고 (말이라는 공통의) 행위는 특정 가치로 수렴됩니..
1. 케임브리지 선원에서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사께 물었다. "나는 참선을 하고 있을 때면 주위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큰 방해를 받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방석이 무슨 색깔인가?" "파란색입니다." "그것은 조용한가, 시끄러운가?" "조용합니다." "누가 그것을 조용하게 만드는가?" 그 제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선사가 말했다. "바로 그대가 만드는 것이다. 시끄러움도 조용함도 모두 그대가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대가 어떤 것이 시끄럽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시끄럽고, 조용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조용한 것이다. 시끄러움은 시끄러움이 아니며, 조용함은 조용함이 아니다.[명가명 비상명] '진정한 조용함'은 조용함도 시끄러움도 아니다. 만일 그대가 맑은 마음으로, 어..
집착에는 집착하는 실체가 없고 내 마음이 집착할 뿐이니 대상(실체)과 내 마음을 동일시하는 것은 부당하다. 어리석다. 무지하다. 외면은 반대로 집착하지 않는 것 같지만 대상을 외면한다는 바로 그 점에 집착과 동일하게 매여있다. 집착은 대상에 끌려가는 반면 외면은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게 없다. 실체가 없는 대상에 끌려가고 거부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그 덕에 괴롭다. 집착과 외면을 너머. 집착과 외면이 다 생각이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모른다의 관점을 되새긴다. '누가 알겠는가?' 집착의 반대는 외면이 아니라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