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常心이 대단히 중요하다. 道가 무엇인가 했을 때 평상심이 도다. 극단적인 예로 부모들이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자식이 어렸을 때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 애가 살아 있을때 잘 살아왔다고 합시다. 잘 살아왔는데 15~6세에 부모보다 먼저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에 생각하면 부모에 마음은 더욱더 아프다. 자식이 죽었기 때문에 부모에 마음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향이 전혀 없다. 근데 부모는 스스로 아파한다. 근데 부모가 아파하면 자식은 불효한 자식이 된다. 근데 15년 살아올 때까지 부모에게 너무너무 잘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칭찬했다. 안밖으로 효도를 했다. 부모의 아픔에 결정적 영향을 준 현재적 인연은 그 아픔은 부모가 만들어 냈지만 자식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파하는 ..
"분별이 일어나면 意가 자아를 구성시킨다고 하는 것은 타인과 나는 다르다라고 하는 분별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분별을 통해서 자기를 구성해 내기는 하지만 분별한 것을 보니까 자성청정심이 함께 어울려서 세계를 구성해서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는 연기적 상황을 모르게 하는데 대해서는 의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러나 그 의가 우리가 태어나는 세상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三界를 결정하는 힘은 아니다. 삼계를 결정하는 힘은 선악이고 삼계를 벗어나는 힘은 禪定力에 의해서 평정력이다. 平定心." T1000.0 : 요컨대 나를 만드는 것은 意이지만 나의 얼굴 내지 운명을 만드는 것은 善惡業이다. 내가 짓는 선악업이 나의 세계를 만드는데 선도 악도 떠난 평상심은 삼계를 벗어나게 한다.
"제팔식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앎들은 제팔식도 이와같이 견분이 있고 상분이 있는데 종자와 근신과 기계라고 했습니다. 제팔식을 이야기할 때 항상 여러분이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종자라든가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제팔식이라는 것이 경험이 잠재된 인식을 갖기 쉽다. 하지만 제팔식 아뢰아식은 잠재된 인식이 아니다. 그것은 떠올릴 때는 기세계와 얼마나 밀착되어서 아주 우리가 알 수 없을 만큼 밀착되어서 교류하고 있는 것을 우리 의식영역에서는 잡히지 않는 것이다. 기세계란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도 또한 잡히지 않는다. 왜냐면 기세계는 한생각 일어나는 순간 기세계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알아, 감수작용으로 뭔가 서로 받아들여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자기 인식 전문에 相을 만들어서 띄워 올리면서 연속 찰라가 행해지면 이름 붙이는 것까지 흘러간다. 이 상이 떠오르면 이 상이라고 하는 것은 상으로만 그치는게 아니고 동시에 이 상을 보고 있는 나라고 하는 의식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내가 대상을 대상으로 보는 순간 대상으로 부터 스스로 소외되어 나라고 하는 인식주체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인식주체가 원래는 하나에 장면에서 연기적 상태로써 앎이라는 장이 형성됐는데 그것이 나 밖의 무엇으로 있다라고 여기는 바로 그 순간 인식장에서 나도 독립되서 나라고 하는 인식주체가 성립되는 것이다. 인식주체가 있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대상화 하는 순간 나도 대상으로부터..
"마음도 쉬고 언어도 쉬었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緣起的 虛忘分別이 보인다. 허망분별하니까 사는 것이 너무너무 허망한 듯 보이지만 그 허망분별이 보일때 비로소 온전한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다. 왜 완벽한 깨달음을 이룬 후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허망분별이다. 허망분별은 원성실성 다음에 나온다. 순서를 말할때 변계소집성을 말하고 의타기성을 말하고 원성실성을 말하는데 실재로 살면서 허망분별이 완벽하니 이해되어 있고, 이해될 뿐 아니라 허망분별을 철저히 사는 때는 원성실성을 완전히 경험하고 나서일 때이다. 그것의 의미는 허망분별해야 부처님께서도 일체 인연처에서도 자기 삶을 고집하지 않고 망향관계에서 연기법을 드러내서 삶을 안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만약 부처님께 삶에 자기 특성이 있어서 자기 특성..
"학습과 사유와 수행이 계속 반복되면서 우리가 그 전에 이러한 것들 있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이러한 것을 구성하는 것의 근원이 이것과 이것의 만남에서 식이 나오는 게 아니고 안다라고 하는 장이 마치 전체적으로 있는데 특별한 인연처에서 A처럼 나오고 B처럼 나오고 C처럼 나오는 거예요. A와 B와 C라는 것이 있어서 만나서 그것이 안다라고 하는 장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고 묘하게 이 안다라고 하는 것이 아까 불각이라고 했는데 불각이라고 하는 상태인데 우리의 의식으로 잡히지 않는 것인데, 그런 상태에서 A처럼 B처럼 C처럼 일어나고 사라진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이것과 저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으로서 자기존재를 구성해 내는 어떠한 실체도 있지 않다라고 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해요. 그..
"전변이란 말은 매순간 변화한다는 말인데 변화한다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같은 것이 다른 상태로 된다는 뜻이 있고 하나는 매 순간 다른 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識이라고 했을때 식이라고 하는 어떤 것이 계속 전에도 있었고 그 식이 변해서 다른 식이 된다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매순간 앎이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일어나고 있는 것 자체가 총체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 전찰라와 후찰라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데 그 다른 것이 안다라고 하는 사실로 나타난다. 변화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생각에 어린이가 어른까지 되어가는데 그 어떤 것은 있으면서 점점 변해서 어른이 되간다고 하는 식의 변화가 아니고, 아예 통체로 어린이와 어른과는 다른 상태가 되가는 것이다. 그래서 唯識이라고 하..
"대상이 비었건 대상이 있건 상관없이 아직 주체적 상황으로 보고 있을 때는 이것이 독전적 자아인 것처럼 존립한다. 이때까지도 유식실성을 제대로 못본 것이다. 그러나 계속보게 되면 이 자체가 인연처에서 모두 들어가서 허망한 자기모습을 한번도 고집하지 않고 알맞도록 변해서 생명할동을 보고 있는데 그러한 생명활동이야마로 참으로 본질이다. 그것이 자기를 쉬고 모든 것이 어울려져서 함께 나눔으로 있는 것 자체가 진여가 된다. 허망은 언듯들어서 안좋은 개념처럼 부르지만 이것이야말로 삶을 진실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바탕이다. 그리고 그 성품은 여기서 항상 같다라고 했는데 항상 같다라고 하게되면 전후찰라가 동일하게 보이는데 전후찰라가 동일하다. 어떻게 전후찰라가 한번도 자기 모습을 동일하게 유지하지 않는다라는데서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