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며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 사실이 그러한데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더러워하거나 깨끗해하거나 길다고 하거나 짧다고 한다면 그 작용은 나에게, 나의 마음에, 나의 연산작용에 의해서다. 나의 연산작용, 나의 선호.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관찰하고 그 마음에 매이지 않는다면, 왜냐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매여 괴롭고, 슬픈 정념에 사로잡힌다면, 헛 일임을 바로 알 것이다. 모든 집착을 끊을 수 있는 이유다. [환상처럼 보기] 2.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화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궁할 요..
1. 왜 그렇습니까? 뭐가 유아론적입니까? 당신은 저와 마주앉아 있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우리는 심지어 악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결코 환상이 아니며 결코 가공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외적 실재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와 악수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느낌들의 지속적인 상호연관을 통해서 당신은 하인츠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인츠 폰 푀르스터에 대해서 그리고 베른하르트 푀르크센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실재라고 표현하는 어떤 연결고리를 발명해 냅니다. 유아론자들은 그들이 홀로 있음을, 그리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
1. 내가 이해한 바로는 니체의 계보학, 은 요컨대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구의 가치인가?"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치의 가치를 묻는 계보학적 태도는 이 가치가 누구에 의해 주장되었고 결국 누가 발명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가치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가치를 객관적이고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실재론으로 삼는 입장을 경계하는데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실재론이 각자의 책임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덧붙여 계보학적 태도는 실재론적 주장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보를 따라감으로서 그 과정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것과 다른 태도를 드러내주는 적절한 방편으로 생각된다. 2. 저를 어떻게든 특정한 범주에 넣으려는 당신의 시도와 당신이 사용하는 그러한 인식론적 어휘들은 나 자신을 상..
1.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
1. 사물의 속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속성은 상대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상대하는 속성은 그 쓰임 역시 상대적이다. 쓰임이 다했다는 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칼이 무뎌지면 그 쓰임이 다한 것인데 이는 날카로운 칼과 상대하여 쓰임이 다한 것이다. 2. 속성의 재탄생, 쓰임의 발명. 쓰임이 다하면 칼의 속성은 사라진다. 칼로 명명되지 않는 쇠. 헌데 칼로 쓰이지 못하지만 또다른 속성이 발명될 수도 있다. 예컨대 피카소는 쓰임이 다한 버려진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로 황소 머리를 발명한다. 또다른 속성, 쓰임이 발명되는 순간이다.어느 날 내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집어다 아래위로 놓아서 황소의 머리를 만든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곧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