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고와 락이 윤회하지만, 내 생각이나 내 욕구가 그럴 뿐,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기뻐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고락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지요.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동생이 같이 있을 때는 뭘 보고 싶으지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고 동생이 자기 보고 싶은 것을 보겠다면 '그래라' 하고 같이 보든지, 보고 싶지 않으면 다른 일하면 됩니다. 보든 보지 않든, 그것으로 동생을 미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답답하면 275)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는 것은 순수한 바람이지만, 그것이 허황한 욕심일 때는 가정의 불화를 가져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아이들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답답해서 부모 몰래 마약을 하고 그러지요. 공부는 안 되지, 부모 기대는 크지, 학교 가서 들으니 잘 모르갰지, 시험 치면 점수는 안 나오지 어떻게 하겠어요? 답답하면 뭘 해요? 술 한 잔 먹게 되겠지요? 답답하면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지겠죠? 그거 갖고도 해결이 안 되니까 마약을 찾지요. 그래도 안 풀리니까 오토바이 타고 빵빵거리며 돌아다니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학교 갔다 와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고 무엇이 아이한테 필요한지, 어떤 도움을 줘..
그냥. 그냥 할 뿐. 이 일이 좋기 때문에 그냥 할 뿐.
목욕실에 가보니 중3 아들이 똥 묻은 팬티를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하여 아들에게 팬티를 치우라고 말했다. 아들은 알았다고 말만하고 하던 게임을 계속한다. 시간을 두고 목욕실에 가보니 또 그대로 있다. 화가 올라오지만 좋은 말로 다시 한번 말한다. '다같이 쓰는 목욕실을 그렇게 쓰면 되느냐? 당장 치워' 아들은 또 알았다고 하고 하던 것을 계속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목욕실에 그것이 안치워져 있다. 자고있는 아들에게 가서 아들을 일으켜 팬티를 치우라고 말했다. 아들은 알았다고 하고 또 잔다. 예전 같으면 멱살을 잡고 목욕실로 끌고가 당장 치우라고 생난리를 쳤을 것이다. 성질대로 하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가마솥에 얽킨 선사들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끝까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
1. 우리가 매사에 불평이 많은 것은 자기가 지은 인연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은 인연을 알면,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불평할 수가 없어요. 부모에게 불평이 많다는 건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답답하면 250) 2. 중생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라는 것은, 부모한테만 불평이 있는 게 아니고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도 불평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편히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길, 음식과 집,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그 하나하나를 따져 보면, 다른 사람들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항상 외우는 구절이 있어요. '한 방울의 물에도 천치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쌀에도 만민의 노고가 깃들어 있고, 한 올의 실타래 ..
1. 살생한 과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요. 그 과보를 그대로 받는다면 당장 그 사람이 나를 죽여야겠지요. 그런데 나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비록 여러 가지 병치례를 하고, 수많은 구설수에 오른다 해도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지지 않겠어요? (답답하면 247) 2. 살아가면서 고통이라 할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생각을 떠올리면 그 상황이 괴롭게 느껴질까요? 과보가 이 정도인 것만 해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미 자기에게는 재앙이 아니지요.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겨도 그냥 고맙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남들은 놀라운 시선으로 나를 보겠지요. '저 사람은 정말 보살이구나. 절너 구설수를 듣고도 가만히 있고, 저렇게 몸이 아픈데도 계속 일을 하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보자. '저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는구나, 짜증을 내는구나' 이에 내가 화가 나면, 짜증이 나면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짜증나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화를 내는 건, 그렇게 반응하게 내 업식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를 화나게 결정할 수 없다. 화는 나의 문제이며, 때문에 상대의 유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한편 '저 사람이 화를 내는 건' 저 사람의 업식이므로 그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수행자라면 자기의 화를 통해 자신의 업식을 들여다보고 업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허나 같은 방법으로 상대의 업식이 들려다보여도 상대를 고치려 들면 안된다. 누구든 결정은 자신만이 할 수 있으니 간섭하지 않는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다만 섭동하라.
1.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면 '일어나야지,' 하는 것은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싫다는 이 생각을 놔 버리면 일어나겟다고 결심할 일도 없고 일어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지지요. 그러니까 문제의 근원을 제대로 보고 가볍게 행하는 것이 수행입니다.(답답하면 239) T. '일어나야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자고, 일어나야하면 그냥 일어나는. 일어나기 않아서 받아야할 과보를 달게 받는지, 아니면 과보를 받기 싫으면 그냥 일어나든지, 양단간에 확실히 하면 가벼운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고 과보도 안받으려는 모순된 욕심이 삶을 무겁고 복잡하게 만든다.